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교
(Ecole polytechnique fédérale
de Lausanne) 연수기
오창명(차의과학대 분당차병원 내분비내과)
저는 2017년 가을부터 2019년 봄까지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교에서 연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로잔연방공과대학교는 취리히연방공과대학교와 함께 스위스의 대표적인 이공계 연구중심대학입니다. 취리히연방공과대학교가 스위스 북부 독어권의 대표 대학이라면 로잔연방공과대학교는 스위스 남부 불어권의 대표 대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연구했던 곳은 미토콘드리아 및 노화 연구에서 세계적인 연구자인 Johan Auwerx 교수님의 실험실 (Laboratory of Integrative Systems Physiology, LISP)이었습니다. Johan Auwerx와 LISP 실험실의 여러 연구자들은 사람 및 마우스 유전체 데이터와 단백체 데이터 등에서 노화 및 각종 대사 질환에서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을 조절하는 새로운 타겟을 발굴하고 있으며, 식물, 선충, 마우스 등 다양한 실험 모델을 이용하여 타겟의 역할을 검증하고 그 하위 기전을 밝히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실험실을 선택한 이유는 이 곳이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을 통하여 새로운 타겟을 발굴하는 것에서부터 이를 검증하는 다양한 연구 기법들을 함께 배울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노화, 비만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뇌와 근육 내 미토콘드리아 단백질 항상성 (Mitochondrial proteostasis) 유지 기전에 대한 연구를 하였습니다.
연구를 하면서 처음에 놀랬던 부분은 해당 분야에서 세계 선도 그룹의 하나인 실험실임에도 실험 장비들은 몇몇 특수 장비들을 제외하고는 장비가 많지 않고, 있더라도 대부분이 낡고 오래된 것들이었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금방 알게 되었는데, 그만큼 대학 내 공용기기실이 잘 갖춰져 있고 공용기기실에서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가령 공초점 현미경 (Confocal microscopy) 촬영을 하고 싶다면, 해당 공용기기실 직원들에게 교육을 받은 다음 기기를 이용할 수 있었고, 현미경 실에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어서 촬영 중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도움을 받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액체 질소나 드라이아이스도 공용실에 갖춰져 있어서, 따로 주문을 하지 않고도 필요한 때에 항상 필요한 만큼 가져다 쓸 수 있었습니다(그림 1A, B). 때문에 개별실험실이 자체적으로 갖춰야할 실험 장비들이 많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점은 실험실 안전에 관하여 안전 설비가 잘 갖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기관 내 모든 직원들이 그 수칙을 잘 따른다는 점이었습니다. 유해한 물질을 다룰 경우 실험실 내 흄후드 (Fume hood)에서 실험을 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기관 전체 인원들에게 안전수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공지가 단체 메일로 뿌려지곤 했습니다. 저도 초기에 β-mercaptoethanol을 벤치에서 열었다가 냄새를 맡은 다른 연구원이 신고를 해서, 다른 실험실의 연구원이 찾아와 우리 랩에는 임신한 여성이 있는데 너가 이렇게 책임질 수 없는 행동을 하면 어떻게 하냐고 화를 내는 등 여러 사람들로부터 항의를 받아서, 며칠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사과를 해야 했습니다. 흄후드 내에서 개봉하지 않아도 되는 시약을 사용하더라도 위험 등급도에 따라서는 때때로 암후드 (Arm hood, 그림 1C)에서 해야 했고, 폐기물도 정확히 지정된 곳에 버리지 않으면 매번 경고가 주어졌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사실 이전에는 잘 지키지 않았던 것들입니다. 실험실 안전의 중요성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었기에 썼지만 좋은 약이 되었던 경험입니다.
스위스 로잔은 아름다운 자연 환경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로잔연방공과대학교도 레만 호수에 바로 붙어 있어서 실험실에서 힘든 날에 산책하면서 지친 마음을 달래기에 무척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림 2). 공기가 깨끗해서 날씨가 맑은 날에는 학교에서 레만 호수 건너편 프랑스의 마을까지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그림 2)에 보이는 학교 맞은 편 도시가 우리나라에서는 생수로 잘 알려진 에비앙 (Evian)입니다. 배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라서, 프랑스에서 살면서 배를 타고 학교로 출퇴근하는 연구자들도 많았습니다.
한국에 돌아오지도 꽤 시일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매주 금요일 랩미팅 시간에 발표를 기다리면서, Johan Auwerx의 연구에 대한 불타는 열정이나 동료 연구자들이 보여주던 연구에 대한 진지하고도 진실한 자세 등을 보며 느꼈던 즐거운 감정들은 아직도 생생하고 또 그립습니다. 1년 반 동안 실험실에서의 생활은 하루는 예상했던 결과에 기뻐하고, 어떤 날은 결과가 반대로 나와서 당황하고, 또 다른 날은 결과가 아예 나오질 않아 우울한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반복적이지만 그럼에도 또 다채로웠고, 그리하여 저도 연구자로서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병원에 부임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던 때에 저에게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주신 분당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님들께 이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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