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98년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생화학을 전공하였습니다. 군의관을 마친 후 연세의대의 교수로 부임했고, 2006년 UCSF로 연수를 떠나 모교의 배려로 3년간의 연수가 끝난 후에도 귀국하지 않고 계속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했습니다. 2011년, 5년 동안의 긴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 부임하여 현재까지 재직하고 있습니다. 제 이력에는 특이한 점이 몇 군데 있습니다. 우선 저는 박사과정을 의학과로 입학했는데, 졸업은 의과학과로 했습니다. 긴 세월에 지난 다음에야 제가 의과학 전공으로 처음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005년에 동기 중에서 제일 빨리 전임강사 발령을 받았는데, 2011년에야 카이스트에 조교수로 발령을 받아 입학 동기 중 가장 늦게 조교수가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계속 가장 늦게 진급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의과학을 전공하고 의과학대학원에서 교수가 되었다는 것이 참 인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의과대학시절 제 담임 선생님이셨던 허갑범 선생님께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항상 보시면 MD-PhD 프로그램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 영향으로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시작하게 되었고, 항상 한국인의 당뇨병이 베타세포 때문이라고 특히 아미노산 결핍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필수 아미노산인 트립토판에서 만들어지는 세로토닌이 베타세포의 증식을 조절한다는 연구를 제가 하고 있었습니다. 박사과정 동안 베타세포와 간에서 glucose sensor로 작용하는 glucose transporter와 glucokinase의 전사조절을 연구하다 베타세포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과연 ‘베타세포는 당뇨병이 진행하는 동안 어떤 변화를 경험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UCSF에서 베타세포 분화와 증식의 조절에 대한 연구를 하였습니다. UCSF에서 연구하면서 임신중 베타세포에서 세로토닌이 합성되어 임신에 대한 베타세포의 적응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규명하였습니다. 이후 지속적으로 베타세포의 증식과 성숙의 조절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베타세포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우연히 세로토닌의 합성을 억제하면 체중이 감소하는 현상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연구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현재 카이스트에서 베타세포와 세로토닌, 두 가지 주제의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베타세포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베타세포의 분화와 증식이 정상적으로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리고 당뇨병의 발병과정에서 베타세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출생초기 베타세포의 증식과 마지막 성숙과정에서 세로토닌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규명하여 논문을 준비 중이고, 혈당이 상승하기 전에 베타세포가 대사적 스트레스에 반응하여 어떻게 변하는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규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후성유전학적 변화에 의해 베타세포에서 크로모좀의 3차원적 구조가 바뀌면 베타세포가 인슐린을 합성하기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미토콘드리아와 소포체의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과정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연구 주제인 세로토닌은 우리 몸의 세로토닌 중 95%가 말초조직에서 만들어 짐에도 불구하고 말초 세로토닌의 기능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쟁이 있다. 우리는 세로토닌 수용체를 지방, 간, 근육에서 결핍시켜서 각 조직에서 세로토닌의 기능을 밝히고 있다. 특히 갈색지방과 베이지지방세포의 분화에 세로토닌이 관여하는 기전을 밝히고 있으며, 동시에 세로토닌과 관련된 다양한 기전을 이용하여 비만, 대사증후군, 지방간 등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발전을 거듭하며 더욱 복잡 다양해지고, 과거보다 더 많은 의사가 배출되고 있는 현대 사회는 의사들에게 과거보다 더 다양하고 어려운 역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거의 모든 과학 분야의 연구 결과를 사람에게 적용하고자 하는 오늘날, 이런 기술의 최종 사용자인 의사들의 역할은 더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진료뿐만 아니라 직접 연구 개발에 참여하는 의사 과학자에 대한 사회적인 수요가 더욱 늘어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사로서의 수련 못지않게 과학자로서 훈련을 받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의사 과학자의 필요성은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만, 개개인의 의사는 이런 길을 가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의 두려움을 갖습니다. 살아가는 방법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혹시 후배들의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여 제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을 적어봅니다.
저는 처음에는 분자생물학에 재미를 느꼈고, 그냥 진료만 하는 것보다 진료와 연구를 같이 하고 싶었으나 국내에는 미국처럼 MD-PhD 프로그램이 없어 의대 졸업 후에 생화학교실에서 박사학위를 하면서 분자생물학 연구를 배웠습니다. 원래는 군의관으로 복무한 후 다시 임상 수련을 받으려고 했지만, 연구에 빠져들면서 미국에 가서 더 깊이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유전자 변형 마우스를 이용하여 유전자의 기능을 좀 더 생리적인 상황에서 연구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 미국행을 결정했습니다. UCSF에 박사후연구원으로 가기로 결정된 상태에서 모교의 요청으로 1년간 전임강사로 근무하고,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습니다. 3년간의 연수 기간이 끝나고 모교로 돌아와야 했지만 하던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선배 교수님들과 상의 끝에 미국에 더 있기로 결정하고 사직을 했습니다. 그렇게 5년간의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끝내고 2011년 카이스트로 부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카이스트의 교수로 지내는 것의 장점을 꼽자면, 연구와 교육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정확히는 연구와 교육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박사과정 학생을 잘 지도하기 위해서는 연구를 잘 해야 하고, 연구라는 훈련 도구를 이용하여 학생을 잘 지도하면 그 학생도 저도 더 나은 과학자로 성장합니다. 우리 연구 팀에는 저를 포함하여 의사 출신 연구원 6명과 생명과학을 전공한 연구원 6명이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 많은 분이 중개 연구, 융합 연구를 이야기합니다. 우리 연구실은 이런 용어로 정의하지 않아도 중개 연구, 융합 연구가 가장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곳입니다. 당뇨병이라는 병을 먼저 알고,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필요한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연구와, 반대로 우연한 관찰로 시작하여 그 현상을 정의하고, 왜 일어나는지 밝히고, 그걸 어떻게 질병의 치료에 이용할까를 고민하는 방식의 연구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연구원들 사이의 자유로운 토론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융합됩니다. 카이스트에서 7년간의 과정을 통해 학생들도 자연스레 성장했겠지만 제가 더 많이 성장하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의사로서 의과학 연구를 하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대부분의 연구가 질병의 원인이나 치료와 관련된 질문을 잘 만들어내고 그 질문을 다듬어서 정교하게 현상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연구의 결과는 질병의 진단, 치료에 이용합니다. 물론 연구실에서 하고 있는 연구가 새로운 치료법으로 연결되어 시행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던 방식으로 미래의 의료 기술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과 꿈을 품고 살아가는 것은 과학자로 살아가는 것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입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저는, 복잡한 서울을 피해 한가한 대전으로 와서 여유 있게 좋아하는 일하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즐거우니까 같이 연구하는 학생들도 즐겁고, 저보다 훨씬 더 뛰어난 학생들이 열심히 연구하니까 자연스럽게 성과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람도 차도 많은 서울을 피해서 대전에 왔는데,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더 바쁘고 더 새로운 일들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가끔 어떻게 하면 좋은 연구 결과를 얻게 되는지 묻는 분들이 있는데 정확한 답은 저도 몰라 그냥 음덕을 쌓으면 된다고 대답합니다. 그런 대답을 자꾸 하다가 저도 궁금해졌습니다.
별로 뛰어나지도 총명하지도 못하지만 꽤 준수한 연구 결과를 내고 있는 이유가 뭘까? 의외로 답은 쉬운 곳에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2-3개의 연구 주제를 주는데, 대체로 학생들은 쉬운 주제보다 자신이 궁금해하는 주제를 가지고 연구를 할 때 더 적극적이고 좋은 결과가 나옵니다. 결국 답은 내가 궁금하고 알고 싶은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연구 결과라는 답보다 먼저 중요한 것은 바로 질문이었습니다.
의사로서 진료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후회가 없냐고 많은 분이 물어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당연히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언제나 내가 하지 않은 선택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 내가 한 선택에 대한 후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후회나 아쉬움은 더 나은 선택에 대한 미련 때문에 생기는 것 같습니다. 임상의사의 길과 연구자의 길, 대단히 어려운 선택이지만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하고 미련이 남습니다. 반면 어떤 선택을 해도 굶어 죽지도 않고 불행해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더 가는 선택을 하시면 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해지려고 노력합니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참고 노력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 하루를 힘들게 보냅니다. 그렇게 참고 힘들게 무언가를 이루고 난 다음에 생각해보면 너무 힘들고 불행하게 살았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정작 우리가 행복 해야 하는 날은 인생의 마지막 날이 아니라 매일매일 살아가는 오늘이어야 함을 잊은거지요.
진로 선택을 고민하시는 분들께 제가 드리고 싶은 조언은 너무 먼 미래를 위한 선택보다 그냥 ‘오늘을 위한 선택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미래가 뭐 우리가 예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지요. 우리에겐 내일이 없다는 생각으로 오늘 하루를 즐겁게 살아도 내일은 다시 내일의 태양이 떠오릅니다. 누구나 다 들어본 말입니다. Carpe diem….Seize the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