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에서 보낸 나의 Sabbatical year
한승진(아주대학교병원 내분비내과)
따뜻한 봄이 와서 좋았는데 곧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시애틀의 맑은 하늘이 그리워집니다. 저는 1년간 미국 워싱턴주의 시애틀에 위치한 Seattle Epidemiology Research and Information center에서 학교에서의 공식명칭은 해외연수이지만 소중한 Sabbatical year (안식년)을 보냈습니다. Sabbatical year은 땅을 쉬게 하기 위해 7년마다 한 번씩 1년간 경작을 하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전통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안식년이라는 말이 언뜻 보기에는 매우 편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강한 믿음이 필요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시간을 몸, 마음, 영혼이 쉼을 얻고 연구에 대한 열정이 회복되기를 소망해서 right time에 right person을 만나는 시기가 되길 바라며 연수를 준비를 했습니다.
시애틀에 가기 전에는 시애틀이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이라는 영화와 긴 우기로 유명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우울증이 많다는 말을 듣고 약간 걱정이 되었는데 막상 연수를 간 시점이 우기가 시작되는 10월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연수 기간 동안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창 밖으로 소리없이 내리는 gentle rain을 바라보면서 보냈던 이 우기였습니다. 이 gentle rain과 잘 어울리는 시애틀의 명물인 커피를 마시면서 누가 시키지도 않는 연구에 흠뻑 빠져서 보냈던 시간입니다. 이 비가 살짝 지겨워질 무렵,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시애틀의 아름다운 여름이 찾아오고 그 때부터는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 outdoor activity를 즐깁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작은 도시 시애틀에 Microsoft, Amazon, Starbucks, Expedia, Boeing, T-Mobile, Costco와 같은 많은 기업들이 일어난 것이 비가 오랫동안 오면서 생긴 사색적인 면이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생산성을 높이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Edward Boyko 교수님과 Japanese American Community Diabetes Study (JACDS) 코호트를 가지고 연구를 했습니다. JACDS 연구는 Wilfred Fujimoto 교수님이 미국으로 이민을 온 Japanese American이 본토 일본인보다 당뇨병과 같은 대사 질환의 발생률이 높다는 것을 점을 착안하여 이와 관련된 위험인자를 연구하기 위해서 계획되었던 코호트입니다. 658명의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코호트이지만 그 당시에는 획기적이었던 CT scan으로 직접적으로 fat distribution을 측정하였고 10 년 동안 long term follow-up을 한 강점을 바탕으로 해서 70편이 넘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JACDS의 연구를 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첫번째는 Fujimoto 교수님이 Japanese American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이 점을 연구영역에서 잘 활용해서 좋은 연구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미 은퇴 하신지 오래되셨지만 제가 논문을 보내드리면 가장 먼저 읽어보시고 여러가지 comments를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두번째는 Fujimoto 교수님과 Boyko 교수님이 보여주신 collaboration 관계였습니다. Fujimoto 교수님이 JACDS 코호트를 시작하여 10년동안 추적 관찰을 마친 후 은퇴하시면서 Boyko 교수님에게 넘겨주셨고 Boyko 교수님은 그 코호트를 십분 활용해서 많은 연구 결과를 도출해 내셨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서로 존중하면서 공동연구를 해오신 두 분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저는 일주일에 한번 Boyko 교수님과 만나서 제가 분석한 결과들을 discussion 하는 시간을 가졌고 특별히 interaction 분석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Boyko 교수님께서 자주 메일로 읽어봐야 할 논문들 또는 세미나 정보도 보내주시고 지금 가 봐야할 시애틀 근교의 주요 관광정보를 알려주셔서 연구뿐만 아니라 시애틀 생활도 재미있게 잘 할 수 있었습니다.
워싱턴주는 아름다운 산과 호수가 많아서 등산하기에 좋았고 시애틀이 도시이지만 집집마다 울창한 나무들을 끼고 있어서 사계절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리고 집 근처에 늘 돌아다니는 청솔모, 작은 토끼, 한번씩 먹이를 찾아 문 앞까지 오는 청둥오리, 그리고 아파트 주민들이 키우는 여러 종류의 애완견을 보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시애틀에서 지내다가 다시 한국의 빠르게 움직이는 일상에 적응하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는 않았지만 잘 쉰 덕분에 이내 적응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좋은 연수지를 소개시켜 주어서 시애틀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신 황유철 선생님, 연수 가기 전 코호트 통계분석법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신 조남한 선생님, JACDS에서 활용되지 못했던 thigh muscle data를 분석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던 김수경 선생님, 1년 동안 저의 빈 자리를 대신해 수고해주셨던 아주대학교 내분비대사내과 선생님들과 제가 돌아왔다고 반갑게 맞아준 저희 환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Copyright(c) Korean Endocrine Societ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