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공직의사
유승현(건강보험공단 서울지역본부 건강지원센터장)
레지던트가 되어 처음으로 내분비내과를 돌게 되었습니다. 교수님들과의 (Diabetes care) 논문 reading 시간에 다루어진 다양한 내용들을 가지고 컨설팅 의뢰 된 환자들에게 찾아가 쉬운 말로 설명해주는 것에 보람을 느끼면서, 막연하지만 왠지 나와 맞는 과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결정적으로는 분과 선택 당시, 영국에서 연수 중이셨던 멘토 교수님께서 유럽에서의 경험을 말씀해주시며 미래를 생각해서 내분비내과를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주셨고, 이 말씀에 따라 주저 없이 내분비 내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타인의 삶에 개입해 변화를 일으키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저의 개인적 성향을 고려해볼 때, 개인의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당뇨병을 보는 내분비의사가 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노베이션이라는 용어가 아직은 낯설던 2000년대 후반, 펠로우 과정을 시작하게 된 저에게 다양한 IT 관련 기업들과 새로운 시도를 시작하던 강북삼성병원 당뇨전문센터는 그 동안 관심을 가져온 ‘테크놀로지와 결합된 당뇨병 관리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뜰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습니다. 병원에서 주어진 방식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의료인과 병원이 가진 한계를 넘어서는 환자 중심의 맞춤형 통합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나가는 것에 대한 고민을 그때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질병 중증도가 높아지는 것을 방치하는, 브레이크 없는 사회가 아니라 CDSS(Clinical Decision Support System)를 통해서, 예방과 치료가 개인의 특성에 맞게 적기에 이루어지는 사회를 구현하는 것을 개인적인 소명으로 품게 되었습니다.
펠로우 이후의 진로를 고민하던 즈음, 유헬스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왔던 당뇨병 환자 전문교육프로그램인 “CDSMP(chronic diabetes self-management program, 미국)/X-pert patient program(영국)을 벤치마킹한 자조교육 프로그램이 건강보험공단에서 대대적으로 운영 된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건강보험공단의 역할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았고 공공영역에 발을 딛는 것에 두려움도 있었지만, 국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자리에 가서 당뇨병 환자들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데 내가 배워온 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부딪혀보자는 심정으로 새로운 조직에 적응해나가게 되었습니다.
건강보험공단은 본부와 6개 지역 본부 그리고 170개 지사를 보유한 전국적인 조직의 복지부산하 공공기관이며, 개인의 소득과 자격에 따른 보험료를 부과 징수하고 의료 서비스 및 재료에 대한 급여를 산정 및 지급하는 것을 주된 업무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서울지역본부 건강지원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저에게 부여된 업무는 건강지원센터 9명의 직원들과 함께 전국민 건강검진 사후관리 업무 및 만성질환 건강지원 서비스 업무, 그리고 합리적 의료 이용 지원 업무(적정 투약 관리 포함)를 총괄하는 것입니다. 아래로는 39개 서울지역본부 관할 지사에 업무를 배분하고 담당 직원들을 교육하여 질환 교육자로서의 전문성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위로는 본부 행정 직원들과 소통의 과정을 통해서 건강관리 사업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실제적인 임상적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모델을 제안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 6개 지역본부 의사 센터장들은 각자 제한된 범위 내에서 재량을 발휘하여 매년 건강 관련 특화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데, 그 동안 수행해온 사업으로는 임신성 당뇨병사업과 모바일 당뇨병예방사업 등이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과 만나 소통하면서 만성 질환관리에 관한 의료적 이해를 높여서 실무자들이 효과적인 사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도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미시적인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거시적인 흐름을 보는 눈을 가질 수 있었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는 과정에서 겸손하게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당뇨병을 비롯한 만성 대사 질환 영역은 암, 치매, 심뇌혈관 질환이라는 4대 중증 질환의 원인이 되기에 사회적인 관심을 받는 정책의 주된 주제입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 환경의 변화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많은 이해관계가 충돌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분비학적 기본 지식을 가지고 그 방법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실제로 의학적 근거와 의료제도로 표현되는 사회적 합의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으며, 의사가 원하는 진료 환경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전문가의 의견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소통하고 설득해나가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분비학을 전공한 선후배님들의 이러한 합의의 과정에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을 가져주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바람이 있습니다. 우리 학회가 미국의 ADA, 유럽의 EASD와 같이 사회적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전문 학회의 위상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 학회에서는 공단과의 MOU를 통해서 빅데이터를 활용해 의미 있는 연구들을 진행해오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국민의 실제적인 건강에 영향을 주는 대규모 연구를 기획하고 그것을 근거로 정부에 정책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것과 같이 국민들의 실제적인 질환 예방과 건강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선배님, 후배님들께 제가 조금은 다른 영역에서 보고 배운 것들을 통해 느끼고 생각하게 된 것들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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