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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zine No.43 | 제18권 1호 <통권67호>

2025년 봄호 대한내분비학회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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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ford University, Division of Endocrinology 연수기

허지혜

허지혜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내분비내과

연수를 마치고 불과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 마치 오랜 과거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행복했던 추억을 되새길 수 있어 참으로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는 2024년 10월부터 2025년 11월까지, 약 1년 2개월 동안 Stanford Medicine 내분비내과에서 Sun H. Kim 교수님의 지도 아래 연수를 진행했습니다.

연수 기회를 처음 얻게 되었을 때, 구체적인 계획이 없던 저는 어느 기관에서 연수를 받을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연구 업적이 뛰어나거나 외국 연구자들과 활발히 교류한 경험이 없었던 터라, 직접 기관에 연락하는 것이 두렵기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2017년 내분비학회 소식지에서 순천향의대 정찬희 교수님의 연수기를 읽고, 개인적 친분이 있었던 강북삼성병원 성기철 교수님을 통해 Sun H. Kim 교수님의 연구실을 소개받을 수 있었습니다. Sun H. Kim 교수님은 인슐린 저항성과 분비 능력을 주제로 다수의 임상 연구를 진행하며, ‘Syndrome X’ 용어를 처음 제안한 Gerald M. Reaven 박사님과 함께 연구하셨던 분입니다. 교수님은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주하신 덕분에 미국 문화에 익숙했지만, 한국인의 정서를 간직한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영어가 서툰 저를 위해 한국어로 소통하려 노력해 주시며 큰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Stanford Medicine 내분비내과는 교수님마다 각자의 전문 분야가 있었지만, 진료와 저널 리뷰 등 과 내에서 이루어지는 아카데믹 활동에는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습니다. 정기적으로 Endocrine Grand Rounds, Journal Club, Mini-symposium 등이 개최되었으며, 대부분 Zoom을 통해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Endocrine Grand Round에서는 세계적인 석학들을 초청해 강연을 듣고, Journal Club에서는 최신 논문을 교수님들끼리 리뷰하며 활발히 토론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내분비내과 Endocrine Grand Round
스탠포드 병원 내 로비에서
미국에서 연구활동

처음 교수님을 만났을 때, 제가 진행하고 싶었던 remnant cholesterol 연구를 제안했지만, 교수님의 연구 방향과는 맞지 않았던 탓에 DIETFITS trial의 데이터를 활용한 새로운 주제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에 Stanford Medicine에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과체중 및 비만 환자에서 low fat diet와 low carbohydrate diet의 효과를 비교 분석하기 위해 진행했던 RCT 연구인 DIETFITS trial의 raw data를 받게 되었습니다.

대략 10개 이상의 엑셀 파일을 받게 되었고, 모두 제가 혼자 자료 정리와 통계 분석을 해야 했던 상황이라, 오랜 기간 손을 놓았던 통계 공부를 다시 하며, 분석을 진행하느라 꽤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처음 교수님이 제안하신 주제인 식이 패턴에 따른 체성분과 인슐린 저항성의 변화를 분석했을 때, 주요 결과에서는 큰 차이가 없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교수님께서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더라도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결과라며 저를 격려해 주셨습니다. 경험이 풍부하신 교수님은 제가 분석한 결과를 검토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시고, 다양한 관점에서 추가 분석을 시도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은 주요 결과에만 의존해 논문을 작성했던 저의 기존 연구 태도와는 크게 달랐고, 이를 통해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석학들은 단 한 편의 논문도 허투루 다루지 않고, 임상적으로 중요한 질문에 집중하며 철저히 고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제가 앞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교수님의 세심한 지도 덕분에 귀국 전에 논문을 성공적으로 완성하며, 1년간의 연수 생활을 뜻깊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PI이신 Sun H. Kim 교수님과 함께 교정에서
연구 활동 외 연수 기간 중 했던 활동들

연수를 떠나며 제가 꼭 실천하고 싶었던 두 가지 목표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가족과 함께 많은 여행을 다니는 것이었고, 둘째는 영어 공부와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바쁜 한국 생활 속에서는 쉽게 할 수 없었던 일들이었기에, 연수 기간 동안 반드시 이루고 싶었습니다. 출국 전, 여러 교수님들의 조언을 참고하여 미국의 대표적인 국립공원 내 숙소를 미리 예약하고, 현지에서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교수님들의 추천을 받아 여행 일정을 세세히 계획했습니다. 덕분에 짧은 1년 동안 정말 많은 곳을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영어 공부도 연수 생활에서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지만, 결론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Stanford University에서는 외국 방문학자와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무료 영어 프로그램을 제공했는데, 저는 그중 하나인 ‘English in Action’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자원봉사자와 1:1로 매칭되어 정기적으로 만나 영어로 대화할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가족은 현지 가정의 할로윈 파티에 초대받아 pumpkin carving을 체험하며 미국의 할로윈 문화를 직접 경험하는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그때 찍은 사진이 Stanford 외국인 학생 웹페이지의 대문 사진으로 실리게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는 가족에게도, 저에게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스탠포드 Betchel international center의 Community Committee for International Students (CCIS) 홈페이지에 실린 가족 사진

운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저는 처음에 다른 교수님들이 하시는 골프를 시도해 보았지만, 제 적성과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포기했습니다. 대신 테니스를 좋아하는 남편의 권유로 테니스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매력에 금세 빠져들었습니다. 매일 아침 아이를 등원시키고 남편과 함께 테니스를 쳤고, 저녁 식사 후나 주말에는 아이들과도 함께 즐기며 가족 간의 유대감을 더욱 돈독히 다질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날씨와 공간 문제로 인해 실외 테니스를 즐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연수 기간 동안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다양한 야외 활동을 즐길 수 있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제가 연수를 보냈던 곳이 얼마나 특별한 장소였는지 더욱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 테니스코트에서 테니스를 즐기는 모습

제가 거주했던 멘로 파크(Menlo Park)는 스탠포드에 방문학자로 온 많은 교수님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특히 한국인 의대 교수님들이 많아 함께 어울리며 즐겁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중 일부 교수님들과는 서로 마음이 잘 맞고 자녀들까지도 잘 어울리면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가족끼리 만나고 연락을 주고받는 각별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평일 저녁, 와인 한 잔을 곁들여 바비큐를 즐기며 나누던 대화는 연수 생활 중 특별한 일상이었고, 이런 경험은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연수 기간 동안 함께했던 이 시간들은 제게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스탠포드 방문학자 교수님들과 파티를 하는 모습

마지막으로, 이렇게 알차고 행복한 연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신 한림대 성심병원 교수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 연수기가 연수지를 고민하며 이 글을 읽고 계신 교수님들께 작은 도움이나 영감을 드릴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