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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이야기 시즌 2:
가을에 잘 어울리는 맥주를 아시나요?

윤석기 (천안엔도내과의원)

2023년 가을은 이상 기후로 예전보다 따뜻한 날씨가 지속되어 반팔 티셔츠를 입고 운동을 하곤 했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살을 에는 추위에 목도리를 두르게 되고 겨울이 왔음을 체감하게 된다. 겨울은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맥주를 마시기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시원한 맥주가 왜 겨울에 어울리냐?"라며 반문할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시원한 목 넘김의 대명사로 맥주를 찾는데, 이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한국산 라거(Larger)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땀을 흘린 후 여름에 마시는 라거 맥주가 귀하듯이 겨울에 마셨을 때 그 즐거움이 배가되는 맥주가 있다.

일반적인 맥주 도수를 훌쩍 뛰어넘어 도수가 10도 이상까지 올라가는 맥주, 이 맥주들을 흔히 '윈터 워머(Winter Warmer)'라고도 부른다. 이름 그대로, 겨울에 몸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스타일의 맥주이다. 대표적인 맥주로 '스타우트(Stout)'라는 스타일의 맥주를 소개하고자 한다. '스타우트'라는 용어는 '스타우트 포터(Stout Porter)'에서 나왔다. 현대 영어에서 '스타우트(stout)'는 땅딸막하고 억세다는 뉘앙스를 띠지만 원래는 단순하고 '강한(strong)'의 의미를 지닌 단어였고, 색깔을 불문하고 알코올 도수가 높은 맥주에 모두 붙여서 사용했다. 현재는 포터와 스타우트 스타일은 분리해서 사용하는데, 1817년 대니얼 휠러(Danial Wheeler)가 맥아를 커피 로스팅기와 유사한 기계에 볶아 소량으로도 짙은 색을 낼 수 있는 블랙 페이턴트 맥주를 개발하면서 포터와 스타우트의 스타일이 갈라지게 되었다.

‘기네스(GUINNESS)’의 역사는 스타우트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759년에 아서 기네스(Authur Guineness)가 만들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었다. 당시에는 맥아에 세금을 내야 해서 아서 기네스는 보리를 맥아로 만들지 않고 로스팅을 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기네스 양조장이 위치한 더블린 지역의 물은 런던과 마찬가지로 어두운색 맥주를 양조하는데 적합했다. 기네스를 잔에 완벽하게 따르려면, 따른 후에 바로 마시지 말고 거품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거품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는 것도 기네스를 즐기는 시간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마실 수 있는 맥주지만, 보기에는 똑같아 보여도 알코올 도수가 4.0~8.0%까지 종류가 다양해 나라에 따라 수입되지 않은 기네스도 있다. 캔에 든 기네스도 판매하는데, 캔 속에 들어있는 공 모양 캡슐인 플로팅 위젯이 펍에서 마실 때 느낄 수 있는 기네스와 똑같은 거품을 만들어 준다.

스타우트는 영국과 아일랜드가 원산인 흑색의 에일 맥주이다. 18세기에 영국의 스타우트 맥주들은 러시아로 많이 수출되었는데,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길은 북해와 발트해를 거치는 추운 해로였기 때문에 맥주가 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높은 도수의 맥주가 필요했다. 도수가 8% 이상인 제품들이 많았고, 도수가 높아진 만큼 스타우트의 주재료인 태운 검은 맥아에서 나오는 다크초콜릿, 커피 등의 맛도 강화되었다. 당시 러시아는 군주가 통치하는 러시아 제국이었기에, ‘러시안 임페리얼 스타우트(Russian Imperial Stout)’라는 명칭이 붙기도 했다. 평균 도수가 8~13%이며, 특히 검은 맥아 맛이 강조된 맥주다. 다크초콜릿, 커피, 태운 곡물, 캐러멜 등의 맛이 나며, 질감과 무게감도 묵직하다. 가볍게 마시기 쉬운 페일 라거 계통과는 다른 맥주로, 한 번에 들이키는 것이 어렵고 가격도 페일 라거의 3~4배이며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음미하기 좋은 맥주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윈터 워머(Winter Warmer)라고 부르는 맥주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임페리얼 스타우트가 이에 속한다.

이번에 소개할 맥주는 전 세계 맥주 마니아를 가장 매료시키는 브루어리 중 하나인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미켈러(Mikkeller)'라는 회사에서 만든 '흑(黑)' 맥주이다 (사진). 라벨에 오로지 '흑(黑)'이라는 한자가 있어 중국이나 일본 등지의 술로 생각할 수 있으나, 실험정신, 모험정신으로 무장한 양조장에서 생산된 제품으로 위스키 배럴에서 숙성된 스타우트이다. 위스키 배럴에서의 숙성 일수에 따라 병목과 뚜껑 부분에 흰색, 금색, 보라색의 양초 같은 왁스가 칠해져 있는 이 제품은 오리지널 버전으로 17.5%의 임페리얼 스타우트(Imperial Stout)에 해당된다. 미켈러의 '흑(黑)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덴마크가 아닌 벨기에의 'De Proef'라는 양조장에서 협업을 통해 만들어진 맥주이다.

향에서는 완연한 초콜릿과 알코올의 향을 풍기고 있으며, 진한 초콜릿 드링크 같은 풍성한 거품 또한 가졌고, 풍미나 입에 닿는 느낌도 진득하고 매우 묵직하였다. 향에서 감지된 초콜릿의 맛과 알코올의 맛이 초반을 장악하고 있으며 그 맛은 소주보다 강하게 느껴졌다. IBU(International Bitter Unit)가 50 이상인 강한 IPA 수준의 씁쓸한 맛으로 목 넘김 이후의 후반에는 홉(Hop) 맛이 지배를 하게 된다. 탄 맛, 알코올 맛, 단맛 등을 제치고 살아남은 홉의 맛이 오래 남아 여운을 주고 있다.

‘맥주는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맥주의 세계는 다양해지고 있다. 현대의 맥주는 마시고 취하는 것이 아니라 와인이나 몰트위스키처럼 선물하고, 한잔 한잔 정성을 들여 즐기는 새로운 문화로서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한겨울 벽난로 앞에서 체온으로 살짝 온도를 높인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한잔하는 것은 과거 러시아 황제가 부럽지 않은 호사를 누리는 것이다. 집에 벽난로가 없으면 어떠한가? 우리에게는 온기를 머금은 아랫목이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즐길 수 있는 더 좋은 장소가 아닐까? 함께 곁들일 수 있는 초콜릿 몇 조각이 있다면 더 따뜻한 겨울이 될 것이다.

"괜찮아, 너와 함께라면 다가오는 겨울은 두렵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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