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미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 내분비내과
긴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연수에 대한 기대가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던 찰나 2022년 여름 즈음 많은 방역 기준들이 완화되며 문득 돌아보니 어느덧 조교수 발령 후 5년 차를 바라보는 시점이었다. 마침 아이도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었다. 하지만 마음처럼 연수지 결정이 쉽지 않았다. 이전 thyroid 및 adrenal tumor/malignancy 관련 연구들을 해왔었고, 가능하다면 이러한 endocrine tumor 분야에서 genomics 연구실을 찾고 싶었지만, 쉽게 연이 닿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정말 극적으로 국립의료원 임정아 선생님께 연락이 닿게 되었고, 선생님을 통하여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UCSD)의 rare cancer 분야 genomics 연구의 선두주자인 oncologist인 Shumei Kato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최근 살펴보았던 pheochromocytoma/paraganglioma genomics와 TCGA 비교 연구 등을 보여드리며 함께 협업을 문의하였을 때 흔쾌히 collaboration이 기대된다며 초대해 주셨다.
미국에 도착하여 다시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해 나갈지에 대하여 논의하였고, endocrine tumor에만 초점을 맞추기는 어려움이 있어 기존 Kato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pan-cancer project에 합류하기로 하였다. Massive한 immunologic transcriptomic data를 공유하고 여러 immunologic marker들에 대한 분석 중 나는 phagocytosis checkpoint 중 가장 연구가 활발한 CD47에 가장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이 immunologic marker와 임상적 변수들 그리고 예후와의 연관성 등을 살펴보는 data analysis 가 주로 내가 하는 일이었고, immuno-oncology 분야에 대한 식견을 넓혀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많은 공동연구자들 중에서도 clinician 중 유일하게 oncologist가 아닌 나를 위해서 계속적으로 따로 보충 및 feedback을 주셨던 Kato 선생님께 지금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미국 생활에서 가장 소중하고 값진 시간은 아마 우리 세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정말 많았다는 것이었다. 같이 대학에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함께 와준 남편에게 너무나도 감사했다. 처음 나올 때는 2~3개월 동안 나와 아이가 잘 정착하면 남편은 적당히 쉬고 한국에 다시 들어갈 생각을 막연히 가지고 있었는데, 함께 지내다 보니 남편도 더 함께 지내며 알찬 시간을 보내기 위해 뒤늦게 수소문하여 여러 clinic에 임상 참관을 하고 임상연수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마지막 한 달을 빼고는 우리 가족은 계속 함께 지냈으며, 이런 행복한 시간을 정말 마음껏 누렸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아이의 등하교를 항상 함께 했고, 어찌 보면 연구실에서보다 더 적극적으로 아이의 학교행사 때마다 나가 봉사활동도 많이 했다. 음력 설에는 아이 학교에 가서 한국의 설날에 대한 책을 같이 읽어주고, 복주머니도 만들고, 한국의 약과도 나누어 먹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는 여태껏 숨 쉬는 운동 외에는 어떤 운동도 못하는 내가 골프에도 도전해 보았다. 쉬이 늘지 않는 실력에 나와 같은 초보 여선생님들 네 명이 골린이 팀을 짜 매번 파3홀에 명랑골프를 나가곤 했었다. 골린이는 벗어나 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건만 한국에 와서는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가게 된 것 같다.
한국인 연수자들이 굉장히 많이 찾는 아파트에 1년간 살았었는데, 정착하자마자 같은 시기에 들어온 우리 가족을 포함한, 신기하게도 모두 딸만 있는, 네 가족과 정말 끈끈한 이웃사촌의 정도 나누며, 타지 생활을 외롭지 않게 든든히 잘 지냈던 것 같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벌써 샌디에고가 그리울 때마다 한 번씩 연락하면 지금도 서로가 샌디에고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정신없이 다시 적응하다 보니, 이제 돌아온 지 5개월가량 되었는데, 연수지에서의 기억은 벌써 몇 년이 지난 것 마냥 먼 기억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이 기억은 언제 꺼내 보아도 행복함 그 자체로 남을 것 같다. 뒤돌아 생각해 보니, 나와 남편과 그리고 아이 모두에게 아주 시기적절한 시기에 연수를 다녀왔다는 생각이 든다. 준비도 크게 안하고 있다가 갑자기 연수를 가겠다고 서두를 때에도 항상 믿고 물심양면 도와주신 홍은경 교수님께 너무나도 감사하고, 내가 없는 동안 나의 몫까지 빈자리를 채워 주신 우리 동탄성심병원 내분비내과 선생님들께 모두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