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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준 (연세의대)

로드 투 카타르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주치의가 된
내분비내과 의사

김광준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

“박사님, 상의드릴 일이 있습니다.”

갑자기 의무실로 찾아온 축구 국가대표팀 지원팀장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국가대표팀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지원팀장이 선수들이 치료를 받는 의무실까지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가 내 눈앞에 있다는 건 그만큼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얘기다. 타박상을 입은 선수를 치료하던 내 손이 자동적으로 멈췄다. ‘설마, 그럴 리가 없는데…?’나는 서둘러 자리를 옮겨서 그가 가져온 소식을 들었다. 코로나19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타난 선수가 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다섯명이나!


2020년 11월 오스트리아로 경기를 하러 떠난 우리 축구대표팀은 FIFA 규정에 따라 경기 시작 72시간 전에 대표팀 선수단 전원에 대한 코로나 검사를 진행하고 결과를 기다렸는데, 확진자가 있다는 검사 결과를 통보받은 것이다. 사실 선수들의 검체를 채취해서 외부의 검사실로 보낼 때만 해도 크게 불안하지 않았다. 그동안 증상자는 단 한 명도 없었고 방역수칙도 잘 지켰으므로 별다른 일이 없을 거라 믿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이 사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머릿속의 회로가 뒤죽박죽 엉켜버리는 것 같았다. 재검을 의뢰했으나 결과는 같았다. 선수들 네 명, 스태프 한 명이었다. 11월 겨울 추운 날씨임에도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하지만 불안해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먼저 확진자들에게 검사 결과를 알려주고 격리를 시작했고 확진자가 격리된 방에는 빨간 테이프를 붙여서 표시를 해두고 절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 확진자들과 단톡방을 만들어서 실시간으로 상태를 체크했고 환기나 가습, 증상에 따른 처치 방법등을 꼼꼼하게 알려주었다. 감독, 스태프와 긴급회의를 갖고 상황을 공유하였다.

그럼에도 예측한 것처럼 검사를 할 때마다 확진자 숫자는 한명, 두명 늘어갔다. 더욱 어려운 문제는 확진판정 받은 선수들에게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만 해도 무증상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열이 오르고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설사, 미각과 후각 상실, 탈모 등 코로나19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증상들이 발현되었다. 건강한 선수들조차 버티지 못할 정도가 되자 나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이 아닌 호텔, 쓸 수 있는 약도 제한적이었다. 마치 몬스터가 득실대는 던젼에 알몸으로 떨어진 느낌..게다가 팀에 의사는 내가 유일했다.

이런 나를 구원해준 것은 우리 대표팀 스태프였다. 스태프들은 그야말로 숨은 영웅이다. 확진 판정을 받은 이들을 챙기는 데 모두가 하나되어 힘을 기울였다. 약과 식사, 간식 등을 방으로 직접 배달했다. 기본 업무에 코로나 방역 업무, 확진자 챙기기까지 3중고였다. 정말 힘들고, 진짜 바빴다. 표현은 달랑 한 줄이지만 여기에 숨어 있는 그들의 발품, 땀방울, 분주함, 시간 투자는 상상이상이다. 내가 표현력이 부족한 것이 너무나 한스러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스태프 그 누구도 불평하는 이가 없었다. 나 같으면 없던 병도 만들어서 방에 틀어박히고 싶을 것 같은데 말이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대가를 더 지불해주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2-3시간만 자고 일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박사님, 어떻게 하면 선수들이 원하는 물품을 안전하게 갖다주고 수거할 수 있을까요?”스태프들은 식사 시간에도 격리자들 식사를 먼저 챙긴 다음에 밥을 먹었다. 스스로를 보호하면서도 동료들을 챙기는 데 게으름을 부리지 않았다. 일손이 모자라는 걸 알기에 내 일, 네 일 따지지 않고 다함께 움직였다. 전우애로 똘똘 뭉쳐 있는 선수단과 스태프를 바라보면서 나도 정신을 바짝 붙들어 맸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이타성이 대표팀 내에 존재하고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면서 뭉클해졌다.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구나, 이것이 내가 대표팀 주치의로 일하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나는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정말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바빴고, 지금 기억을 더듬어 봐도 3주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다 생각나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벤투 감독은 더했을 것이다. 최상의 팀으로 경기를 준비해야 하는데 베스트 일레븐에 들어가야 할 선수들이 확진 판정을 받았으니, 전력 구상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밖에. 한국에서라면 대체 선수를 뽑을 수 있겠지만 머나먼 오스트리아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럼에도 벤투 감독은 차분히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모든 결정을 함께 했다. 그가 한말이 생각난다. ‘닥터! 우리팀에서 당신이 코로나의 최고 전문가고 우리 모두는 당신의 지시에 따르겠다.’그리고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수단을 통솔하여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통산 500번째 승리를 따냈다.


선수들은 어떤가?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속마음은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증상이 생기면서 힘들어 하는 동료들을 뒤로 하고 경기장에 나서는 마음이 오죽했을까. 사실 코로나 감염사태를 고지하면서 내가 가장 염려했던 건 선수들이었다. 선수들은 몸이 재산인 사람들이니 얼마나 당황하고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그런데 내 예상을 깨고 선수들은 차분했다. 이걸 순수하다고 해야 할까, 무모하다고 해야 할까. 선수들의 시간이 이전과 똑같이 흘러가는 걸 보면서 신기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내가 묵는 숙소 옆방에 확진자가 생겼다면 방을 바꿔달라고 했을 것이다. 나부터 그랬을 것 같다. 내가 옮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주저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인간의 당연한 본성으로 여겼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선수들과 스태프 모두 특별한 요구나 불안을 표현하지 않았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다 나을 거야.” 저마다 방안에 격리 중인 이들이 잘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외치면서 용기를 주느라고 애썼다. 그리고 마치 아무일도 없는 듯 경기를 치뤘다. 비록 2차례의 경기를 모두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선수들의 투지, 정신력, 집중력을 본 나는 이제 이들이 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지막으로 축구협회는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한 후 신속하게 대응방안을 정리하였다. 언론의 질타, 부정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선수단의 안전을 챙기면서 동시에 오스트리아 원정의 소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현지에 있는 국가대표 지원팀장, 팀닥터에게 주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전권을 부여한 것이다. 의사인 나는 이 점이 퍽 놀라웠다. 대부분의 조직문화가 그러하듯 협회 역시 주요 사안들에 대해 현장이 아닌 사무실에서 보고를 받고 결정한다. 그러나 현장은 현장 실무자들이 가장 잘 안다. 협회는 이를 알고 현장 책임자를 믿어주면서 재량권을 인정해 주었고, 덕분에 우리는 그때그때 맞는 해법을 찾아가며 즉각 대처할 수 있었다.


또한 협회와 상황을 공유하고 협의하는 과정은 나에게 교훈을 남겼다. 사실 의사인 나는 선수들의 건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내 눈엔 오직 그것만 보였다. 하지만 한명의 의사가 아닌 축구대표팀 주치의라면 달라야 한다. 오스트리아 원정의 목표가 ‘방역’과 ‘경기력’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었기에 무작정 포기보다는 상황에 맞는 해법을 찾는 게 더 타당했다. 실제로 축구협회는 선수들의 건강을 포함해 경기 운영 전반, 코로나19에의 대응력, 선수들의 경기력, 올림픽과 월드컵 등까지 보고 있었다. 내 스승과도 다를 바 없는 윤영설 의무분과위원장도 마찬가지였다. 선수건강이라는 기본에 더해 경기력, 원정경기의 전반적인 상황, 대한민국 축구의 나아갈 방향까지 함께 고려하면서 조율하였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현상만을 바라본다. 사건 자체에 매이고 매몰되기 쉽다. 사건뿐 아니라 주변 환경까지 통합적으로 바라보면서 사고하지 못한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다 원인이 있고 관계인의 입장이 있기 마련이다. 리더라면!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의사인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하고 있는가? 과연 우리는 의사 개인이 아닌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 생각하고 고민하는가? 전문가라는 우산 속에서 우리 생각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과연 우리가 이 위기상황을 해결하는 리더가 될 수 있을까? 벤투 감독이 귀국 후 한말이 있다. ‘코로나 판데믹에도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다해야한다’.

이제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살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바뀔 수 있지만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나는 이 시대에 의사로서의 역할이 무엇일지를 축구를 통해 배워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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