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versity of Michigan, Ann Arbor
임정수 (연세의대 원주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저는 2019년 7월부터 2021년 6월까지 2년 동안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Ann Arbor)에 위치한 University of Michigan에 해외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한국에 복귀한 지 어느덧 1년 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앤아버에서의 연수 경험은 저에게 여러모로 큰 전환점이 된 계기였습니다.
어디를 연수지로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주변에서 조언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음에도 처음 해외 연수를 계획할 때는 준비 과정이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고민 끝에 제 연수 기간을 개인적인 재충전의 기회로 삼는 것, 그리고 우리나라 연구 환경에서 쉽게 접하지 못했던 부신 분야를 제대로 공부해보는 것으로 방향을 설정하였습니다. 연수 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primary aldosteronism에 대한 연구를 하기로 마음먹고 관련 문헌들을 검색하던 중 primary aldosteronism의 genetic origin과 aging에 따른 aldosterone의 변화에 대한 흥미로운 논문들을 발표하신 William E. Rainey 교수님께 연락을 드리게 되면서 University of Michigan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University of Michigan은 U of M, UM 등의 약자로도 불리며 교색인 옥수수색과 파랑색을 이용한 “M”자가 학교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입니다.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UC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UCLA) 등과 함께 이른바 Public Ivy에 속하는 연구 중심의 공립대학으로, 1817년 디트로이트에 처음 개교하였다가 1837년에 지금의 장소인 앤아버로 이전하였으며 플린트(Flint)와 디어본(Dearborn)에도 지역 캠퍼스가 있습니다. 간혹 Michigan State University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엄연히 다른 대학입니다. 학교의 상징은 울버린(Wolverine)이며, 세계 최대 규모의 미식축구 경기장이 있을 정도로 University of Michigan 구성원들의 미식축구 사랑은 유명합니다. Central campus가 위치한 앤아버는 디트로이트 공항에서 차로 약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위치해 있는 도시로, 규모는 작지만 거주하는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높고 미국 내에서도 살기 좋은 도시 1-2위에 자주 랭크될 정도로 안전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대학을 중심으로 발전한 도시이다보니 지역사회 곳곳에서 대학 건물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연수를 떠나기 전에 앤아버에서 살았던 동기가 “대덕연구단지 같은 도시”라고 얘기해줬던 기억이 나는데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University of Michigan은 Conn’s syndrome으로도 알려진 34세의 primary aldosteronism 여성 환자의 증례를 1954년에 최초로 보고한 Jerome W. Conn 박사님이 재직하셨던 곳이기도 합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Rainey 교수님의 직함은 Jerome W. Conn Professor이기도 해서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이어받아 Michigan Adrenal Research Group은 현재 primary aldosteronism을 비롯한 Cushing’s syndrome, Adrenocortical carcinoma, Congenital Adrenal Hyperplasia 등 부신질환 연구에 있어 기초 및 임상 분야 모두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부신 연구자들간의 국제 네트워크인 A5를 이끌고 있기도 합니다.
앤아버는 내분비 연구자들이 많이 가는 연수지가 아니어서 정보가 많이 부족했지만 UM international center에서 합리적인 process를 통해 DS-2019 등의 필수 서류가 제 때 발급되도록 도와주고 외국에서 온 연구자들이 문제 없이 입국 및 정착할 수 있도록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어 연수를 잘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제 경우에는 재미 교포가 운영하는 정착 서비스를 활용하여 출국 전에 이미 아파트 계약을 마쳤고 자동차 역시 후보 리스트를 미리 알아보고 출발했던 덕분에 미국 생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운 좋게도 미시간 주는 우리나라 운전면허가 인정되는 주여서 운전면허증 역시 별도의 운전면허시험을 치르지 않고 바로 취득할 수 있었던지라기에 정착 과정이 한결 수월했습니다. 제가 앤아버에 도착한 즈음에는 summer festival, art fair 등의 다채로운 행사들이 차례로 진행되는 시즌이어서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적응기를 거치는 동안 실험실에서는 실험 기법을 차례로 익혀 나갔고, Rainey 교수님과 포닥, 연구원들과 함께 프로젝트에 대한 정기적인 미팅을 가지면서 여러 실험 결과에 대한 해석 및 문제해결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주로 사람 부신 조직을 활용하여 DNA/RNA sequencing 등의 기법을 통해 primary aldosteronism의 발생기전을 설명할 수 있는 aldosterone-producing cell clusters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2020년 초에 중국에서 시작된 COVID-19이 한국에서 급격히 번지고 있다는 뉴스를 들을 때만 해도 현지 미국인들처럼 저 역시 한국의 감염 상황을 걱정하였을 뿐 앞으로의 일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미국에서도 본격적인 COVID-19 유행이 시작되었고 미시간 주가 미국 전체에서 5위 안에 드는 발생률을 보이게 되면서 3월 중순 이후 모든 학교, 관공서 등이 문을 닫게 되었고 저희 실험실 역시 폐쇄되었습니다. 원래부터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서구의 문화적 특징 때문에 Shutdown 초반에는 마스크를 제대로 쓰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웠고 질 좋은 한국산 마스크는 커녕 일반 마스크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더욱이 다른 도시들에서 심심치 않게 동양인에 대한 혐오 사건들이 뉴스를 통해 보도되면서 약 2달 간은 생필품 구입을 위해 마트를 가는 것 외에는 외부 활동을 최대한 자제했습니다. 앤아버에서는 다행히 큰 문제 없이 힘든 시기가 점차 지나가고 있었고 감염 상황도 안정되면서 필수 인력을 중심으로 실험실이 천천히 오픈되었고 저도 6월부터 다시 실험실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다른 분야를 전공하는 연구자들의 발표나 재미있는 환자 증례에 대한 세미나도 자주 열렸었는데 팬데믹 이후에는 거의 모든 워크샵이 zoom으로 이뤄지고 횟수도 대폭 축소되어 인적 교류의 기회가 많이 줄어든 점이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연구원들과 일정을 조정하여 주 4회 출근이 허용되어 멈춰졌던 연구 프로젝트를 다시 가동할 수 있었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최대한 마무리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연수 기간 동안 Michigan Adrenal Research Group의 일원으로 일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PhD와 MD가 서로 관심 있는 질환에 대한 임상-기초 지식을 공유하고 정기적인 랩미팅, 세미나 등을 통해 열정적으로 토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동연구가 이루어지는 분위기였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미국내 타 대학 및 독일, 일본, 호주 등에 있는 세계적인 부신 연구자들 간에 형성된 연구 네트워크 역시 활발한 공동연구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부신 조직 등의 인체 유래물과 환자 데이터를 매우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시스템도 인상적이어서 아이디어만 있으면 바로 실행할 수 있는 University of Michigan의 연구 환경이 매우 부럽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지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매일 운동 겸 집 근처를 산책하면서 계절에 따라 아름답게 변하는 나무와 호수, 풍경을 늘 접하고 즐길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햇살이 가득한 미국의 파란 하늘, 다채롭게 변하던 구름들, 밤에 유난히도 반짝이던 달과 별들, 현관문을 열기만 해도 쉽게 볼 수 있었던 토끼와 다람쥐, 도로를 마음대로 활보하던 거위 무리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주말에는 근처 도서관에 들러 햇빛을 쬐면서 책이나 DVD를 빌려 보기도 하고 가까운 시카고로 며칠 여행을 가기도 하고 아크릴화 수업도 들으면서, 정신없이 바쁜 생활 속에서 미처 돌보지 못했던 마음의 여유와 건강을 챙기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이지라 미국의 느린 행정시스템에 답답함을 느낀 적이 많았지만 이내 그들만의 ‘느림의 미학’에 익숙해졌습니다. 근처 한인 마트를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타야 하는 것도 매번 낯설었지만 재미있었고, 며칠 동안 끊임없이 눈이 오는 미시간의 매서운 겨울을 지나 진정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만끽할 수 있었던 것도 제가 앤아버로 연수를 갔기에 가능했던 경험이었습니다. 비록 COVID-19 확산으로 인해 미시간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캐나다로의 여행 계획과 미국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 교수와의 여행 계획을 실행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전이었던 2019년 10월 할로윈 초대장을 받고 실험실 동료들과 같이 Rainey 교수님 댁에 방문하여 만찬을 즐기던 시간 역시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보다 어려운 상황에서 연수를 시작하셨던 분들도 많이 계셨음을 잘 알기에 2년 간의 연수 기간 동안 크게 아프지 않고 무탈하게 복귀할 수 있었음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뜻하지 않게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미국을 몸소 체험하는 동안, 의료 현장에서 묵묵히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셨던 여러 선생님들의 소식을 들으면서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과 의료진들에 대한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기회를 빌어 소중한 연수 기회를 허락해 주신 연세대학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교수님들과, 출국할 때 연수 잘 다녀오라며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신 부신연구회 교수님들께도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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