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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zine No.40 | 제17권2호 <통권64호>

2024년 여름호 대한내분비학회 웹진

해외 연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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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USC), USA

오태정

오태정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연수를 떠나기 전

대부분의 내분비내과 선생님들이 그러하듯이 나도 해외 장기연수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꿈이 있었다. 분당서울대병원에 임용된 해에 첫돌을 맞이했던 딸이 어엿한 초등학생이 되고, 해외 장기연수에 대한 열망이 극에 달했을 때 비로소 연수 계획에 대해 구체화할 수 있었다. 여러 연수지 후보 중에서 연구 주제와 별개로 나에게 중요한 연수지의 조건은 좋은 날씨와 지루하지 않고 편리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여러 고민 끝에 LA 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하여 연수지를 LA으로 정하고 연구기관 물색을 시작하였다.

LA와 근교에는 여러 훌륭한 연구 기관들이 많았으나 그중에서도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USC)에서 Leonard Davis School of Gerontology의 Pinchas Cohen 교수님 연구실이 나의 학문적 흥미를 충족시켜주면서 워라밸 (Work and Life Balance)을 꾀할 수 있는 곳이란 느낌이 왔다. 정성스레 CV를 업데이트하고, 이메일을 보내고 난 뒤 바로 다음날 아침 Pinchas Cohen 교수님께서 화상 미팅을 하자고 연락을 주셨고, 곧바로 1:1 미팅을 하게 되었다. 첫 미팅에서는 연구에 대한 이야기보다 미국에서 누구와 지낼지, 어디에 살면 좋은지, 본인 연구실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는지 등등 매우 캐주얼한 대화를 나누었다. 화면을 통해서이지만 교수님의 첫인상은 매우 좋으셨고, 유머와 함께 여유로운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한국인 연구교수님을 연결해 주셔서 정착 계획을 세우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그때부터 Pinchas Cohen 교수님 연구실에서 발표되었던 연구 내용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고, LA 지역에 대해서도 열심히 탐구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학문과 새로운 살 곳을 알아보는 것은 모두 설레고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Bioinformatics가 중요한 연구 소양이라 생각하여 출국 전 서울대학교와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서 개최하는 유전체 분석 워크숍에 참석하여 다시 ‘학생’이 된 기분으로 나름의 선행 학습도 하였다.

연수를 떠나기 반년 전 zoom을 통해 Pinchas Cohen 교수님 연구실 (모두가 교수님을 Hassy라고 부르고, 연구실은 Hassy’s lab으로 통하였다.)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 첫 온라인 미팅에서 자기소개(연구 관심사 소개)를 할 수 있는 시간을 할애해 주셔서 호기롭게 61장의 ppt 파일을 만들고 떨리는 마음으로 연구실 사람들과 첫인사를 나누었다. 나에게는 소중하지만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연구에 큰 관심을 보여주었고, 호의적인 연구실 분위기가 느껴져서 해외 연수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졌다. 출국 2달 전에는 미국당뇨병학회 차 미국에 방문하면서 USC에 들러서 연구실 사람들과 첫 대면 미팅을 하고, 거주지에 대해 탐색도 좀 할 수 있어서 정착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USC 캠퍼스 내 Tommy Trojan 동상
(“Fighting On”이라는 전투적 정신의 상징)
연수지에서의 연구 생활

Hassy’s lab은 humanin, MOTS-c 등 Mitochondrial Derived Micropeptide (MDP)를 발굴하여 이에 대한 기능을 최초로 보고한 연구기관으로써, 다양한 MDP 후보를 발굴해서 임상치료제로 발전시키는 것을 최종 연구목표로 하는 곳이었다. Discovery 단계에서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에 대한 GWAS 개념인 MiWAS를 그리고 미토콘드리아 전사체에 대한 정보는 MDP-sequencing이란 기법을 활용하고 있어 이러한 분석 방법에 대해 새로이 공부할 수 있었다. 물론 발굴된 물질에 대해 다양한 모델을 이용하여 기능 평가를 하는 여러 실험실적 연구들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아직 출판되지 않은 후보 MDP (타깃 질환: 당뇨병, 비만, 전립선암 등)에 대해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연구실에서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아침에 랩 미팅이 있었는데,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계속 토론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꽤 깊이 있고, 긴 미팅이 이어졌다. 첫 한 달은 미팅에 참석하면서 어떤 연구들이 진행되는지 알아보는 탐색의 시간이었고, 이후 Hassy 교수님께서 POLG 유전자에 대해 공부해서 연구주제를 제안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POLG 유전자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복제하는 polymerase gamma를 코딩하는 유전자로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다양한 신경학적 문제 및 대사적 문제가 발생하는 중요한 유전자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MDP-sequencing 분석을 배워보고 싶어서 마우스의 심장 조직을 이용한 RNA sequencing 공개 데이터를 찾아서 MDP-sequencing을 수행하고, 유전자 돌연변이에 따라 변화하는 MDP 유전자 정보를 탐색하는 연구를 시행하였다. 그리고 룩셈부르크 대공국의 국가 원수가 POLG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어서 여기에 상당한 연구비가 풀린 것이라는 기대 하에 Hassy 교수님과 함께 fund proposal을 준비해 보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POLG 변이와 관련된 인간 유래 데이터와 샘플 확보가 어려워서 fund 결과를 기다려 보기로 하고 두 번째 프로젝트를 연이어 맡게 되었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KLOTHO 유전자에 대한 것으로, The Health and Retirement Study 데이터를 이용하여 MiWAS에 기반한 유전체 분석을 하였으며, 미토콘드리아 유전체가 핵 유전체와 상호작용을 할 것이기 때문에 이 둘을 엮어서 variant를 찾는 NuMIT (Nuclear Mitochondrial Interaction Test) 기법을 처음으로 적용해 보기로 하고, Gerontology Bioinformatics Core의 Thalida Em Arpawong 교수님과 함께 흥미로운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협업을 하였다. 유전체 분석을 처음 해보는 입장에서 너무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다행히 Chat GPT의 도움과 실험실 팀원들의 도움으로 다양한 장애물들을 극복할 수가 있었다. 랩 미팅 시간에는 언제든지 자유롭게 내 연구주제를 발표할 수 있었고, 팀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리였기에 랩 미팅에서 발표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보다는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실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PI 교수님의 역량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다양한 연구자들과 조인트 미팅도 많았고, 당뇨병 타깃에 대한 실험에 대해 논의할 때는 콜롬비아 대학의 Domenico Accili 교수님도 조인하여 논의하는 등 다양한 공동연구자들과 대면 또는 온라인으로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주도했던 연구는 돌아오는 미국당뇨병학회에서 포스터로 발표할 예정으로 이 기회를 통해 다른 연구자들의 생각도 듣고 연구 결과를 더 발전시킬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한국으로 복귀 직전에는 PI 교수님의 도움으로 글로벌 협력 연구과제를 준비해 보았고, 선정 결과에 상관없이 앞으로도 계속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

2024년 Lunar New Year 행사
연수지에서의 삶

LA에서의 정착을 위해 한국에서 틈틈이 정보를 수집하였고, 미리 미국 계좌와 전화번호를 만들 수 있어서 한국에서 화상 통화로 집을 구하고, 유틸리티와 아이 학교 등록을 출국 전에 모두 마칠 수 있었다. 나의 이런 급한 성격 덕이었을까? 아이 학교 등록이 입국보다 빨리 되어서 한국 시각으로 새벽에 학생이 학교에 등교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한동안 받아야 했던 해프닝도 있었다. 드디어 D-day! LA에 도착하니 화창한 날씨가 우리 가족을 맞이해주었고,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긍정의 아이콘인 딸아이는 첫날부터 씩씩하게 등교를 잘 했고, 큰 어려움 없이 적응하는 듯해 보였다. 초반 2개월 동안은 남편 없이 지내야 했지만 이후 남은 기간 동안은 세 가족이 똘똘 뭉쳐서 즐거운 미국 생활을 누렸다. 미국의 각종 국립공원과 여행지를 도장 깨기 하듯 다녔던 것도 좋았지만 나는 LA 생활 자체가 무척 만족스러웠다. 한국에서는 일 년에 몇 번 가볼까 싶은 마트도 매주 종류별로 다니면서 탐색하는 즐거움이 있었고, 새벽 운동으로 전동 카트를 타지 않고 걷기 운동 삼아 돌던 골프장의 풍경도 좋았고, 여름에는 할리우드볼에서 그리고 그 외의 시즌에는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에서 LA Phil 이 선보이는 다양한 레퍼토리의 음악들이 나의 삶을 가득 채워주는 기분이었다. 우리 병원에서 함께 일하던 교수님들도 같은 지역에 많이 계셔서 다른 가족들과의 모임을 갖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LA에서는 향수병을 느낄 틈이 조금도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지금 한국에서 향수병에 시달리는 것 같다. 이렇게 연수기를 써 내려가다 보니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좋았던 기억이 더 증폭되어 남는 것 같고 힘들었던 경험도 미화되는 것 같다.

진심으로 눈에 밝히는 환자들도 많았는데, 그동안 나의 공백을 잘 채워주었던 장한나 교수님과 병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USC에서의 연수 경험이 당장의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지라도 나의 내분비내과 의사/의학자로서의 삶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연수지에서의 삶은 우리 가족에게 영원히 남을 소중한 추억거리가 될 것 같다.

알래스카 가족 여행
헐리우드볼에서 임윤찬과 LA Ph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