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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연세대학교 이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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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호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해외 연수지가 결정된 뒤, 정신없이 한국에서의 밀린 일들을 정리하느라 집도 차도 알아보지 못한 상황에서 에어비엔비와 렌트카만 일주일 예약해두고 2020년 1월 말에 출국하여 다음 날 아침 비자서류 때문에 연구소를 방문하였을 때, 처음으로 제 눈에 띈 것은 연구소 주변 안개 속에 거닐던 칠면조와 사슴 무리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제가 연수를 시작하게 된 곳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1시간 반 가량 떨어진 Novato라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의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Buck Institute for Research on Aging 이란 이름의 연구소입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화에 대한 기초연구를 위해 미국의 한 거부가 기부를 하여 1999년에 지어진 연구소로, 노화연구에 특화된 22명의 교수들의 랩과 연구직, 관리직 등을 포함해서 250명 정도 인원이 일하고 있는, 생각보다 규모는 작은 편이었지만, 노화세포(cellular senescence)의 특성을 처음으로 규명한 Judith Campisi 등 노화 연구의 대가들이 높은 수준의 연구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주된 연구 분야로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노화의 생명학적 현상을 연구하는 코어를 포함하여, 암, 여성생식기계, 알츠하이머병 등 신경퇴행성질환, 염증, 줄기세포, 세포 스트레스, 운동/영양/대사, 미토콘드리아 등의 분야에 있어서 노화의 역할 및 기전 규명에 집중하는 랩들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연구소이다 보니 UC San Francisco, UC Buckley, UC Davis 등 다양한 주변 대학 및 병원과의 공동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Sirtuin, NAD metabolism 과 노화에 대해 주로 연구를 하고 있는 Eric Verdin의 랩에서 노화 연구의 실험적 기법들과 면역 및 대사에 미치는 노화의 기전과 관련하여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출국 전 내분비학회와 당뇨병학회 선생님들께서 잘 설명해주신 족보를 열심히 읽어보면서 집도 계약하고, 차도 구하는 등 미국 생활에 차근차근 적응을 하는 가운데, 랩에서도 실험할 주제와 기법들에 대해 공부하고, 포닥들과 토의하면서 하루하루를 지내는 중에, 중국에서 시작되었던 COVID19이 미국에도 첫 코로나 환자가 생겼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고, 그 당시에는 의료 선진국인 미국에서 잘 관리가 되어 해결될 거란 낙관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 주가 흐르자 미국 내에서 엄청난 수의 환자들이 발생하여, 결국 연구소를 포함해서 모든 학교, 관공서 등이 문을 닫게 되었고, 급기야 집에서 절대 나오지 말도록, 생필품 등 구입을 위해 외출하는 것 이외에는 경찰이 이동하는 차량을 모두 단속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당시 노화에 대해 새로운 연구를 해보겠다는 꿈 대신 우선 바이러스로부터 가족들의 건강을 지켜야한다는 소망으로 암울한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습니다. Shutdown 초반에는 마스크를 구할 수가 없어서 아마존에서 한 개에 2만원까지 파는 경우도 있었고, 미국 역사상 유래 없는 사재기가 코스트코 등 여러 대형 마켓에서 발생하고, 지나가던 흑인은 저희에게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지르는 걸 경험하니, 이러다 한국에 다시 돌아가야하는 것 아닌가 심각히 고민을 하기도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3개월쯤 지나 사태가 점차 호전되면서, 코로나와 관련된 필수 연구 인력만 연구소에 출근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 저는 뜻하지 않게 랩의 다른 포닥과 함께 코로나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를 맡아 기본적인 실험적 술기들을 배우게 되었고, 실험실 생활에 차츰 적응하면서,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선천성 면역시스템의 주요 세포인 대식세포에서의 노화 및 NAD 대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실험실에서 일할 수 있는 인력을 50% 이하로 유지하도록 하는 규정 때문에 각자 시간표를 서로 공유하여 겹치지 않게 출근하여 실험을 진행해야 했고, 모든 미팅은 zoom으로 하고, 식사는 각자 차에서 해결해야만 하는 열악한 환경으로 인하여 제가 연수 계획을 세우면서 주요 목표로 삼았던 것 중 하나인 연구자 네트워크를 확립하고 인맥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없었던 부분이 가장 아쉬운 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곳 실험실 생활을 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개방적이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연구소의 분위기였습니다. Scientist라는 이메일 그룹이 있어서 이것을 선택하여 항체 등 자신이 필요한 실험 재료나, 처음으로 해보고자 하는 실험 술기, 실험 장비 등에 대하여 알고 있는 연구자가 있는지 전체 메일을 보내면, 항상 연구소의 누군가는 답장을 하여 서로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분위기였습니다. 각자의 프로젝트로 바쁜 상황 속에서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시간을 내어 도와주고, 설명해주기 때문에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실험을 해서 가설을 확인해볼 수 있고, 교수들 간의 교류없이 포닥이나 학생들끼리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뜻하지 않게 collaboration 이 이루어지고, 연구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 이 작은 연구소가 노화 분야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임상과 실험을 병행할 때 기초 실험을 진행하면서 막막한 상황들이 많았지만, 주변에 물어보거나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러한 분위기는 참 부러운 점이었습니다.

또한, T 세포에서의 노화에 따른 대사적 특성 및 표현형 변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연령의 사람 말초혈액단핵세포 샘플들이 필요하였는데, 인체유래물센터가 잘 수립되어 있어서, 연구자들이 필요로 하는 조건의 많은 양의 세포 샘플들을 제공받을 수 있었습니다. 환자 샘플에 대한 접근성이 높은 한국의 대학 병원에서도 인체유래물 관련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아 각 연구자 별로 인체 샘플을 확보해야하는 상황들이 향후에는 개선된다면, 여러 연구자들이 더 높은 수준의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연수 다녀오신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연구 외적으로 연수기간 동안 제가 얻는 가장 큰 선물은 가족들과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항상 일에 치여 주말에만 잠깐씩 아내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코로나 때문에 몇 달 동안 24시간 내내 함께 붙어 지내고, 실험실에 나간 뒤에도 항상 함께 저녁을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주말엔 근처로 하이킹이나 여행을 다니다 보니 가족과 함께 했던 매순간이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이 된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집 안에만 있다 보니 답답해진 아이들이 졸라서 강아지를 분양 받게 되었는데, 결국 강아지 훈련과 산책, 목욕, 청소 등은 고스란히 제 몫이 되어 후회하기도 했지만, 강아지랑 친구처럼 항상 붙어 지내면서 점점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연수기간 동안 잘한 선택이었던 듯 합니다.

제가 세브란스병원을를 잠시 떠나 있던 지난 2년 동안 한국에서 공공의대 등 이슈로 인한 정부의 의료계 탄압과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의료 일선에서 너무나 고생을 하신 선생님들께 참으로 죄송스럽고 감사한 마음을 이 자리를 빌어빌려 말씀드립니다. 서울에서 고층 건물과 아파트, 미세먼지 속에서 여유없이 생활하다, 아침에는 사슴이, 저녁에는 너구리가 돌아다니고,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푸른 하늘과 밤에는 별이 쏟아지는 시골의 자연 속에서 2년 간 지내니 몸과 마음이 힐링 된다는 말을 새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던 기간이었고, 향후 한국에 돌아와서 대학에서 보낼 20여 년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귀중한 기회를 주신 선배, 동료, 후배 교수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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