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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ty of Pittsburgh, Pennsylvania

유지희 (고려의대 안산병원 내분비내과)

2022년 3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지난 1년간의 해외연수를 떠올리며 그 시작이 어땠는지를 돌이켜보니 코로나19 유행 이야기를 먼저 시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전 해외 연수를 다녀오신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코로나 유행으로 미국에 가서도 거의 집에만 있고 아이들도 학교에 가지 못할 때가 많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과연 코로나 유행이 아직 끝나지 않은 시점에 연수를 가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인 2022년 2월 한국의 상황은 코로나19 확진자수가 이전 12월과 1월보다 10배 폭증한 상황이었고, 국내 2월 한 달의 확진자 수가 지난 2년간 전체 확진자 수의 73%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함께 진료보는 간호사, 함께 방을 쓰는 연구실 교수님까지도 확진되는 상황에서 내 턱밑까지 좁혀온 바이러스 감염에 과연 온 가족이 무사히 코로나 음성 확인서를 들고 비행기에 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불안했습니다. 또한 한국에서의 익숙한 삶을 뒤로 하고 13살, 7살 되는 두 딸들을 데리고 무작정 타국에 가려니 낯선 타지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빠진 서류들은 없을지 걱정 반, 설레임 반으로 밤잠을 설치던 2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온 가족 모두 코로나 음성 확인서를 받아들고 꽉 채운 이민 가방들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막상 도착하고 보니 미국은 방역 단계가 이미 완화되어 병원과 버스를 제외한 나머지 장소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한국의 분위기와는 달리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다니는 풍경에 굉장히 낯설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다행스러웠습니다. 덕분에 이민 가방에 꽉꽉 눌러 담아 챙겨갔던 K94 마스크들은 거의 그대로 다시 한국으로 짊어지고 귀국해야 했습니다.

신동헌 교수님과 실험실 멤버들

제가 연수를 다녀온 곳은 미국 피츠버그 의과대학의 발생생물학부(Department of Developmental Biology) 소속의 제브라피쉬 실험실이었습니다. 연수지의 결정은 모든 연구자분들이 그러하듯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었습니다. 크게는 미국이냐 아니냐, 미국이면 동부냐 서부냐, 실험실로 갈것이냐 아니냐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제브라피쉬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에 제브라피쉬 중개의학연구소가 있어서 연수 가기 몇 년 전부터 제브라피쉬를 이용한 실험을 조금씩 해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쁜 저의 개인적인 업무들과 피쉬(fish) 실험 기술을 가진 연구원의 부재, 그리고 저의 기초 실험 지식의 부족으로 인하여 실험 진행이 더디고 답답하던 차에 연수지를 정하게 되었고, 제브라피쉬 실험을 좀더 깊이 있게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적절한 실험실이 어디일지 고민하던 차에 본교에서 제브라피쉬 연구를 주도하고 계시는 박해철 교수님의 소개로 미국 교수님 실험실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신동헌 교수님은 서울대학교 분자생물학과를 졸업한 이후 현재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제브라피쉬(zebrafish)를 이용해 간 재생(liver regeneration) 분야 연구를 활발히 하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간 재생 분야가 내분비 대사분야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생각되어 약간 고민이 되었지만, 1시간의 줌미팅을 통한 화상 인터뷰를 통해 피츠버그 실험실에서 제브라피쉬와 연관된 다양한 실험 기법들을 배우고, 제가 관심 있는 지방간 동물 모델을 만들어 올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고 연수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University of Pittsburgh에서의 연수가 확정되면서 DS2019 발급 및 미국 피츠버그 생활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1년간 지낼 집을 구하기 위해 저의 남편은 미국 부동산 사이트에 나와있는 집들을 수없이 검색하고, 신동헌 교수님께 주거지 관련 정보들을 여쭤 보기도 하면서 나름 학군이 좋은 단지를 추천받기도 하였지만, 실제 현지에 가보지 않고 1년간 살집을 온라인으로 계약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교수님의 추천지를 비롯하여 대략의 후보지들만 몇 군데 정해 놓고 현지에 가서 둘러보고 집을 정하기로 하고 무작정 미국 피츠버그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실험실에 계신 한국인 박사님 한 분이 공항으로 마중나와 주셔서 편안한 마음으로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착한 이후 2주 동안은 시차에 적응할 새도 없이 그동안 온라인으로 봐 두었던 집들을 둘러보고, 미국 핸드폰 번호 발급, 은행 계좌 개설, 운전 면허증 발급 등의 업무들을 처리하면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2주 뒤에 적당한 조건의 집을 계약하게 되었지만, 집을 구한 이후에도 필요한 가구들을 구매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입학시키고, 자동차를 구매하는 등의 기본적인 일들을 세팅하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도착 후 2달 동안은 매일 바쁜 날들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피츠버그 대학의 상징인 배움의 전당(좌), 실험실이 위치한 biomedical science tower(우)

바쁜 와중에 3월초부터 미국 피츠버그 대학의 실험실로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험실은 의생명과학 센터(biomedical science tower)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곳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명찰을 총 4번 이상 스캔해야 출입이 가능할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게 이뤄지는 곳이었습니다. 이 건물의 5층에는 제브라피쉬를 이용해 간, 심장, 신장 등의 재생 연구를 하는 각 분야별 실험실들이 모여 있어 정기적으로 공동 lab meeting을 가짐으로써 각 교실의 실험 결과들을 공유하고 최신 저널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공동으로 사용하는 큰 규모의 fish room이 있고 이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전담 매니저 분들이 여럿 계셔서 물고기 사육 시설이 쾌적하게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오리엔테이션과 여러 동물 실험 관련한 교육들을 이수하고 난 이후 첫 한달 동안은 신동헌 교수님께서 바쁜 와중에도 저를 1:1로 직접 지도해 주시면서 기본적인 실험 테크닉 및 실험실에서 돌아가는 전반적인 일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물고기의 암수를 구분하는 기초적인 과정부터 transgenic or mutant fish를 만들고 genotyping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배울 수 있었고, 1-2개월이 지난 이후에는 실험실에 계신 다른 박사님들과 함께 여러 실험들을 하나씩 직접 해보면서 조금씩 손에 익힐 수 있었습니다. 제브라피쉬 실험은 목적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주로 태어난지 일주일 이내의 치어(larvae)로 실험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굉장히 작은 크기여서 현미경을 보면서 해야만 하는 작업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여러 종류의 현미경들의 작동법을 익히는 것도 배워야할 일들 중 하나였습니다. 고맙게도 실험실에 계셨던 여러 한국인 박사님들이 모두 잘 알려주셨고, 그 중에서도 저는 소주훈 박사님과 함께 주로 실험을 진행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방간 대사 연구를 하고 있던 실험실은 아니었지만 제가 관심갖고 있는 지방간 동물 모델을 만들기 위해 교수님과 박사님들 모두 흔쾌히 애써 주셨습니다. 제브라피쉬 지방간 모델을 만들기 위해 여러 review 논문들을 읽어보면서 고민하던 중 교수님과 논의 끝에 7월쯤에는 형질 전환 지방간 모델 제작을 할 수 있게 되었고, 2023년 1월 귀국할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제작한 모델의 phenotype을 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 다행히 지방간이 잘 유도됨을 확인하여 교수님, 박사님들과 함께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형질전환 모델을 제작 후 키우는 시간 동안 저는 특정 chemical 처리를 통해 유도된 제브라피쉬 지방간 모델을 이용하여 2상, 3상 임상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지방간 치료의 후보 약물들 중 몇 가지를 테스트하였습니다. 그 결과 사람과 마찬가지로 제브라피쉬에서도 지방간 호전 효과가 그대로 재현됨을 확인함으로써 지방간 연구를 위한 동물 모델로서 제브라피쉬가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방간 모델을 이용하여 drug screening을 진행하면서 지방간 호전 효과를 보이는 새로운 약물도 발굴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모든 실험 결과들이 귀국을 앞둔 무렵이 되어서야 나오기 시작하여 더 진행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던 점이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배움과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이어서 연구를 진행해 나가려 합니다.

피쉬 룸(fish room) 전경

피츠버그의 날씨는 우리나라의 강원도 북부 지역 날씨와 비슷한 정도로 느껴졌는데 한국보다 겨울이 좀더 빨리 찾아오고 눈도 많이 내리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세먼지 가득한 한국의 봄 날씨와 다르게 항상 하늘이 맑고 푸르렀고 여름에도 습하지 않은 대륙성 기후 덕분에 후덥지근하지 않은 화창한 여름 날씨가 좋았습니다. 덕분에 어느 정도 미국 생활에 적응이 된 이후로는 가족들과 여기저기 공원도 많이 다니고 주말이면 캠핑을 다니는 것이 한국에서 누릴 수 없었던 소소한 즐거움이었습니다. 특히 미국의 공원은 집 근처의 평범한 공원들조차 나무의 크기가 몇 아름인지 가늠이 안될 정도로 큰 울창한 나무들이 많고 드넓은 야구장, 테니스장, 농구 코트가 동네마다 널찍하게 구비되어 있어 규모면에서 한국의 공원과 차이가 크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사슴들이 어디서든 종종 출몰하고 여름철 해질녘에는 반딧불이 잔디밭에서 일제히 반짝이는 풍경은 마치 디즈니 만화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1시간 거리에 위치한 라쿤 크릭 주립공원(Raccoon creek state park)에 위치한 캐빈을 예약해서 종종 캠핑을 즐기곤 했는데 큰 호수가 있어서 아이들과 보트도 타고 마쉬멜로도 구워 먹고 총총한 밤하늘의 별들을 감상하며 먹었던 라면의 맛은 저희 가족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딸기와 블루베리를 수확하는 철에는 광활한 농장에 가서 바구니 한가득 딸기나 블루베리를 따는 체험들도 아이들이 너무나 즐거워했습니다. 할로윈에는 큰딸 친구 집에 저희 가족도 함께 초대 받아서 낙엽 쌓인 동네 주택가를 돌면서 “Trick or treat”을 하고 다양한 코스튬을 입은 여러 아이들과 할로윈 장식된 다양한 집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한국에서의 학원 뺑뺑이 생활과는 달리 미국 학교의 생활은 아이들에게 훨씬 여유로웠고 학교에서 계절별로 개최되는 댄스파티나 다양한 여름 캠프들을 딸들에게 경험시켜 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미국 국내 여행도 많이 다녔는데 워싱턴, 뉴욕, 나이아가라 폭포, 이리호, 버지니아 비치, 올랜도 등 미국 동부 지역의 주요 명소들을 주로 돌면서 한가득 추억과 사진들을 남기고 돌아왔습니다.

피츠버그의 멜론 파크(좌), 라쿤 크릭 주립공원 호수(우)
딸기따기 체험 농장(좌), 피츠버그의 한 주택가의 할로윈 풍경(우)

피츠버그에 공항이 있어서 저희 집 안방 창문으로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비행기들이 자주 보였습니다. 밤에는 미국산 맥주나 와인을 종종 한 잔씩 즐기면서 ‘저 비행기를 타고 피츠버그에 왔었지.. 조만간 저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가겠지..’ 하는 생각에 잠기며 후회 없는 연수 생활을 보내고 돌아가자는 다짐을 종종 했던 것 같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바쁜 한국의 일들과 육아에 지쳐 번아웃이 왔던 저에게 미국에서 1년간의 시간은 이색적인 환경과 새로운 사람이 주는 에너지로 채워지면서 어느덧 일상의 행복과 연구의 재미를 다시금 느낄 수 있게 해줬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자연이 아름다운 미국땅에서 한창 예쁜 나이일 시점의 아이들과 주말 시간을 오롯이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신동헌 교수님과 실험실 박사님들을 비롯하여 미국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과 함께한 배움의 시간들 또한 저에겐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집 근처 커피가 맛있던 “타자 도르” 커피숍에서 남편과 즐겨 마시던 까페 라떼의 맛이 주는 따뜻함과 일상의 여유도 벌써 그립기만 합니다. 피츠버그에서 보냈던 시간들은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평생 제 마음속에 남아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즐거운 1년 간의 연수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 수 있도록 병원에 남아서 진료, 교육, 연구에 항상 애써 주신 김난희, 서지아, 이다영, 박소영, 정인하 교수님을 비롯한 안암, 구로, 안산 병원의 모든 고려대학교 내분비내과 교수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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